레이디 가가 'Chromatica' 리뷰

Danny Park
2020-06-26
조회수 1803

원문: https://blog.naver.com/dannypark_official/222005906471


I'd rather be dry, but at least I'm alive

Rain on me, rain, rain

젖지 않는 게 더 좋지만, 내가 살아있는 이상

내게 비를 내려줘, 비를, 비를

(Lady Gaga, 'Rain on Me' 중)


"나는 크로마티카(Chromatica)에 살아요." 6집 정규앨범으로 돌아온 레이디 가가는 앨범의 제목인 'Chromatica'를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가 아닌 외계 행성이라고 소개한다. 'Chromatica'의 어원이 된 영단어 'chromatic'은 색깔에 관련되어 있다는 뜻을 가진 영단어인데, 레이디 가가의 크로마티카는 그 이름의 뜻대로 모든 색깔의 음악과 모든 색깔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앨범의 리드 싱글인 'Stupid Love'의 뮤직 비디오는 크로마티카의 세계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레이디 가가는 크로마티카에 존재하는 여섯 부족에게 각각의 상징색을 부여했고, 그녀 스스로는 각 부족의 갈등과 분열을 막고 긍정적 에너지를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Kindness Punks 부족의 일원으로 분한다. 현재 미국의 집권여당인 공화당을 상징하는 Government Officials와 민주당을 상징하는 Freedom Fighters의 대립 구도 역시 인상적이다. 이렇듯 크로마티카는 다양한 색깔의 부족과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며, 이를 토대로 레이디 가가는 우리에게 크로마티카에서의 공존을 촉구한다.


<Chromatica>는 총 세 파트로 구분되는데, 각 파트는 1분 이하의 인터루드('Chromatica I', 'Chromatica II', 'Chromatica III')로 시작되어 다음 곡들(Alice, 911, Sine from Above)으로 물흐르듯 유려하게 이어진다. 레이디 가가가 이번 앨범에서 내세운 일렉트로팝 스타일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우며 곡별 완성도 역시 수려하게 느껴졌으나, 인상적인 트랙이 대체적으로 초반부에 포진해 있다는 점은 상당히 아쉽다.


첫 번째 파트(이하 '크로마티카 I')에서 가가는 스스로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소개한다('Alice'). 곧이어 중독적인 멜로디와 사운드가 매력적인 'Stupid Love'가 이어지고, 큰 시련을 겪었으나 자신이 살아있는 이상 그 고통을 기꺼이 마주해 이겨내겠다는 'Rain on Me'를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 부른다. 실력이 보장된 아티스트이자 그녀 나름대로의 시련(2017년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전 남자친구 맥 밀러의 약물중독으로 인한 사망)을 겪은 아리아나 그란데는 이번 트랙에 가장 적합한 피처링 아티스트로 보인다. 한편 그 뒤로 이어지는 곡들('Free Woman', 'Fun Tonight')은 다소 평이하게 흘러간다.


두 번째 파트(이하 '크로마티카 II')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나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나'라는 라인이 반복되는 '911'이다. 흥겨운 리듬과 비트 위에 레이디 가가는 '천국이 바로 내 손에'라고 노래하며 본 트랙에서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항정신성 약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크로마티카 II'에서 가가는 팝 시장에서 아티스트가 상품화되고 대중들이 자신의 입맛대로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빼앗는 세태를 비판하며 자신을 플라스틱 인형에 비유하고('Plastic Doll'), 'Sour Candy'에서는 세계적인 K팝 아티스트인 블랙핑크와 콜라보레이션을 펼쳤으나 '크로마티카 I'에서의 아리아나 그란데만큼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또한 자신에게 찍힌 낙인(stigma)을 파괴하고 스스로 수수께끼(enigma)가 되겠음을 선언하는 'Enigma'와, 자신의 상처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자신 속의 괴물들이 되살아난다는 내용의 'Replay'에서 보듯 '크로마티카 II'는, 더 나아가 <Chromatica>는 레이디 가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그녀의 고충에 대해 담아내고 있다.


마지막 파트(이하 '크로마티카 III')는 더 흥겨워지기보다 부드러워지기를 택한다. 엘튼 존과의 듀엣이 인상적인 'Sine on Me'에서는 엘튼 존과 협업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장악력과 무게감 있는 엘튼 존의 보컬에 더욱 놀라고, 두 아티스트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잘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제일 크게 놀랐다. 천 마리 비둘기처럼 하늘을 날겠다는 '1000 Doves'를 지나고 나면 자신의 가십에 대해 노래하는 'Babylon'으로 이번 앨범<Chromatica>가 마무리된다.


지난 몇 년간(정확하게는 3집 <ARTPOP> 이후로) 침체기를 겪던 레이디 가가는 2018년 영화 <스타 이즈 본>을 통해 다시금 떠오르고, <Chromatica>를 통해 가가의 중흥기를 다시 써내려가고 있다. 가가의 이전 앨범들을 들어본 바는 없지만 <스타 이즈 본>과 이번 <Chromatica>에서 보여준 바를 보면 앞으로 레이디 가가가 밟게 될 행보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커리어가 비에 젖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팝 가수로 활동하는 이상 레이디 가가는 자신에게 마음껏 비를 내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녀는 빗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변함없이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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